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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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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 (청소년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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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마음의 양식.” 20대까지는 별생각 없이 이 말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독서를 하는 사람은 남들에게 양식이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양식이 있는 사람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혹은 내가 스스로에게 달아준 ‘지식인’이라는 알량한 이름표를 즐기기 위해서 늘 한 손에 적당한 두께의 책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 책들은 언제나 표지가 바깥을 향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끔흘끔 볼 수 있게 드러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어찌어찌 그 책 속의 글을 눈으로 쫓아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이제 나는 그 책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 책의 마지막을 본 그 때의 나는 남들과 그 책에 대하여 토론하고 남들에게 그 책을 추천하거나 혹은 추천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생각해 본다. “그 때의 나에게 그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독서를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모를 압박감에 그저 ‘글씨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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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독서는 눈으로 글을 따라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독서라는 행위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을지 모르지만,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은 오지를 탐험하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진정한 독서의 과정에서, 우리는 저자들의 사상을 좇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생각을 나의 것과 비교하기도 하며 때로는 나를 침범하려는 그들의 목소리를 쫓아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책을 선택하고 어떤 목적으로 그 책을 읽는가에 따라 그 책을 읽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통해 앎과 지혜 그리고 깨달음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책 속에 나열된 활자들을 맛보는 것을 넘어 책 자체를 씹어 먹어야 함은 분명하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가 말하였듯이, “독서는 단순히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이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그제야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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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서분투기 응모작들은 그러한 진정한 독서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응모자들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면서 심사자로서의 입장을 순간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같은 책에 대한 응모자들의 다양한 감상을 읽으면서 마치 같은 재료로 만든 여러 훌륭한 음식들을 맛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응모작들이 박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가운데, 특히 본 심사자의 눈길을 끈 것은 『배우는 법을 배우기』를 읽으면서 느낀 점을 방송대 학생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진정성 있게 녹인 서미옥(영어영문학과) 응모자의 글이었다. 같은 책(『배우는 법을 배우기』)에 대하여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 김창숙(국어국문학과) 그리고 『그건 혐오예요』의 주제의식에 맞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가하는 차별과 혐오 그리고 “우리들” 사이의 혐오를 표현한 이지영(중어중문학과)의 독서분투기 역시 그 못지않게 훌륭한 감상문이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다른 응모작들 역시 각각의 장점이 있으며 본 심사자에게 지극한 즐거움을 주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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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과정에서 응모자들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자 즐거움이었다. 어서 책을 한 권 골라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먼저 책표지를 볼 수 있게 집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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