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과 물길은 인류의 문화와 문화가 소통하고 문명이 교류했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교통로의 의미를 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길은 인류역사의 발전과 문화의 생성, 소멸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역사적인 현장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나말여초와 조선의 빛나는 문화는 남한강 뱃길을 따라 구경할 수 있다. 교통로와 물길 주변에는 이제는 터로만 남아 있는 절이 융성한 한때를 증명한다. 정약용의 생각을 읽고 싶다면 마재로 가라. 민중의 저항정신을 되새기고 싶다면 지리산으로 가라. 길은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삶의 공간인 것이다. 한반도는 이미 거대한 박물관이다. 생생한 현장이 살아 있다.
“옛길 따라 역사 여행”
삼국시대의 남한강 물길부터 시작해
조선시대 한반도 서북지역을 연결한 의주대로와 간선도로인 영남대로,
신분과 계층을 달리한 사람들이 찬탄해 마지않던 서촌의 길,
통신사의 국제교류 통로인 연행길, 정약용의 고향 마재,
반역을 꿈꾸던 자들의 집결지 지리산까지,
당시의 문화를 증명하는 옛길을 따라 걷는 인문 여행이 시작된다.
문화가 꽃피었던 현장을 찾아서
삼국시대 남한강을 따라 조성된 선종사원에는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번영했다.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을 오가던 연행노정은 동아시아 문명길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의주대로와 영남대로를 한반도 교통길이었고 남한강 뱃길을 따라가면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다. 서촌의 아름다운 경관은 그림으로 전해 내려오며 다산 정약용의 다양한 활동 공간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초의 숨을 느낄 수 있는 지리산, 새로운 농촌을 실험한 홍동 등 길과 공간에 집중하면 당대의 문화와 역사가 눈앞에서 그려진다.
물길의 역사, 옛길의 역사
남한강은 사통팔달하는 교통로이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일찍부터 풍부한 경제적 기반과 인구를 바탕으로 호족들과 후삼국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남한강의 요지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던 선종사원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다. 당시의 활발한 세력 다툼은 절터로 남아 있고 그 유물은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중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연행노정에서 중절 구간은 험하기로 유명하여, 모래가 씹힐 정도라니 고행길과 다름없었다. 또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인 회령령과 청석령은 옛길의 흔적이 가장 온전히 남아 있어 옛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들에게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성찰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리산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둘레길만 휘휘 걸어서는 알지 못한다. 지리산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연을 품은 산이다. 신령한 자태로 우뚝 솟아 자애롭게 민중을 품으며 반역을 꿈꾸는 자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민족의 산을 이해하려면 이야기를 들은 후에 답사에 나서야 한다. 권력에 저항한 민중의 활동무대인 실상사, 연곡사, 그리고 남부군 총대장 이현상 유적지까지 돌아보면 지리산의 정기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옛 기록이 증명하는 문화유산
남아 있는 역사기록, 고지도, 그림은 당대를 재현한다.
지리지에 기록된 전국의 도로, 그중 의주대로를 그린 많은 고지도는 이 길의 쓸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 중요성을 잊지 않고 오늘날 말을 타고 가두행진을 하는 파발행렬이 연출되고 있다.
신분과 계층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의 내력을 안고 있는 지역에 걸맞게, 많은 이들이 서울 서촌을 그렸다. 옛 그림에서 서촌은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촌 답사는 그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의 자취가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절감하는 길이 될 것이다.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다시 들여다볼 일이다.
남한강 뱃길을 따라가면 18세기 전후의 여행문화가 펼쳐진다. 시인과 묵객이 남긴 여행기와 그림은 남한강 명승지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림마다 여행기마다 풍류가 넘치니, 오늘날 인문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정약용의 고향 마재는 또 어떤가. 그는 유배지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시를 썼다. 정약용이 머물렀던 공간을 가보지 않고서 그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