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비롯되어 펼쳐졌다. 대부분의 한민족은 근대화를 겪으면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핍박의 세월을 보냈지만, 반면에 근대화 덕택으로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 책은 열 가지 주제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근대와 만났으며,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증기기관차를 난생처음 본 민중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내몰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성·아동·청년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썼을까? 식민지 관료는 해방 후 어떻게 변신했을까? 이 땅의 노동자는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근대 자본은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을까?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이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익숙한 소재로 본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근대 사회에 관한 이야기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과목이나 대학 교양과목으로 배우는 우리나라의 근대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그로 인한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당연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한국의 근대 모두 배우기에는 다뤄야 할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제국주의 열강이 침략한 후 조선(대한제국)의 왕실과 관료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했는지,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가 어떠한 정책으로 민중을 괴롭혔는지, 일본에 대항한 대표적 인물은 누구이며 어떻게 싸웠는지, 해방 이후의 민중의 삶은 어떻게 변하였는지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근대화 과정을 뭉뚱그려서 배웠을 것이다.
이 책은 총 10가지 주제, 즉 철도, 주택, 시간, 여성, 어린이, 청년, 관료, 자본가, 노동자, 해외이주민으로 한국의 근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사회적 측면에서 낱낱이 살펴보자.
“도깨비가 장난치는 게야. 이 괴물은 악령이 붙었어!”
우리나라 철도는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계획한 일제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를 통해 배운 지식이다. 그러면 철도를 난생처음 본 조선 민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책에서는 인용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역 주변에는 구경하러 나온 조선인들로 온통 흰색 물결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어른들이었다. 괴물같이 생긴 기관차를 보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들을 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역에 나와 보았으며 기관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 기관사가 장난삼아 쇠말뚝으로 갑작스레 연기를 뿜어 내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느라 대소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장면은 마치 무리를 지어 우왕좌왕하는 우둔한 양떼를 연상케 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하는 기차. 그러나 당시 우리의 조상들이 기차를 보고 나서 무엇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겠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가면 포탄에 맞아 운행이 중단된 기차가 유물처럼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남북 분단의 상징이 아닌, 근대를 살아가던 민중 입장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기차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가.
여성, 어린이, 청년…… 아직도 근대에서 살고 있는가?
오늘날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용어 중 근대 시기에 만들어진 말이 있다. 여성, 어린이, 청년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근대 이전에 여성은 부녀로, 어린이는 아(兒) 또는 동(童) 또는 유(幼)로, 청년은 약년(弱年) 또는 소년(少年) 또는 자제(子弟)로 쓰였다고 한다. 부녀, 아․동․유, 약년․소년․자제 등과 같은 용어의 특징은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받은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종속되거나 불완전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근대 시기부터 이들에 대한 인권과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여성, 어린이, 청년 들은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권리 신장에 앞장섰다. 여성의 경우, 1945년에만 여성 조직이 약 20개에 이르렀으며, 정치/사회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어린이와 청년의 경우에도 조직 결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심지어는 좌우 대립으로 격한 양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분명히 한국 근대 시기의 여성, 어린이, 청년이란 개념이 탄생한 과정과 이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했고, 당시에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근대에 살고 있는가?
가슴 아프지만 되돌릴 수 없는 역사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하여 근대화를 이루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기근, 차별, 강제 해외이주, 전쟁 용사 및 종군 위안부로서의 강제 징용 등 가슴 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함과 동시에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생활이 더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해방 후 강제 이주한 동포가 돌아왔지만, 이들을 반겨 주는 이가 없어 다시 쫓겨난 곳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움트는 자본주의 속에 노동자의 시름은 더 깊어져 갔다.
반면에 해방 후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제가 물러나고 한반도를 정상화하겠다는 명분하에 미군이 들어와 심판받아야 마땅한 친일파 관료들을 그대로 등용하였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명분하에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오늘날의 대기업 설립자에게 말도 안 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특혜를 제공하였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파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역사를 배우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은 뉘우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가슴 한켠이 아리면서 현대사회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