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에서 ‘인물’이라는 선택지는 적어도 두 가지 이점이 있다. 먼저 인물의 삶과 행적은 과거라는 이국(異國)으로 들어서는 모험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통로와 같다. 우리와는 상황도, 성품도, 마주친 문제도 전혀 달랐던 인물이라 할지언정, 그의 행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가 한 명의 인간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으며, 나아가 그가 살아갔던 세계에 어느 정도 호기심을 품게 된다. 둘째로 이러한 접근법은 역사의 구체적인 면모를 포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전문적인 역사학자라 할지라도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몇 가지 경향과 원리로 요약하고픈 유혹을 피하기란 어렵다. 문제는 그렇게 도출된 요약이 곧 특정한 시대와 사회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준다거나, 혹은 그러한 원리를 모든 경우에 자명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식의 그릇된 믿음에 빠지기가 너무나 쉽다는 데 있다.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인물의 삶과 행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직면했던 서로 다른 상황을 일별할 때 우리는 거시적인 ‘구조’, ‘원리’의 작용이 실제로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띠며, 때로는 그러한 구조나 원리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이점은 이 책의 핵심 주제인 근대를 이해하는 과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 근대화와 이를 둘러싼 논의가 오랫동안 지구적으로 전개되어 왔음을 고려할 때, 이를 체험하고 성찰한 인물의 시선은 근대라는 거대한 무언가를 조금 덜 낯선 대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각각 근대와 서로 다른 관계를 맺었던 다양한 인물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근대, 근대화, 근대성을 어떤 단일한 실체로 바라보는 대신 서로 다른 상황에서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난 복수의 형태, 즉 근대‘들’, 근대화‘들’, 근대성‘들’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인물과 근대라는 두 가지 항을 연결하는 이유이다.
제1장 마키아벨리와 정치에 대한 거리의 목소리 … 윤비 제2장 새뮤얼 리처드슨과 근대소설의 탄생 … 이우창 제3장 북방의 계몽군주,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 … 이승은 제4장 근대 민주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 귀족 혁명가 앙토넬 … 김민철 제5장 쥘리앵 레몽과 투생 루베르튀르, 노예해방과 자유의 의미 … 민정기 제6장 환재 박규수, 척사와 개화의 갈림길 … 소진형 제7장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 이새봄 제8장 유길준의 근대 서양 정치사상 수용과 입헌군주제 구상 … 김현 제9장 루쉰과 중국의 근대 … 최정인 제10장 루정샹의 외교: 동아시아 근대 외교의 시작과 쟁점 … 김봉준 제11장 하니 모토코가 경험한 근대: 그리스도교·생활과 교육·애국심 … 이은경 제12장 E. H. 카와 근대 … 조준배 제13장 라라지 보운, 편견 없는 교육자가 북돋운 아프리카와 영국의 성인교육 … 신동경 제14장 피에르 부르디외, 투쟁하는 장들의 근대 세계 … 이시윤 제15장 위르겐 하버마스, 근대를 비판하면서 지켜 내기 … 이시윤
이우창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18세기 영국소설과 여성 담론의 지성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서양사 담당 교수이다. 18세기 영국 지성사, 특히 젠더 담론의 역사를 연구하며, 현대 한국의 정치적·도덕적 담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 리처드 왓모어의 『지성사란 무엇인가?』(2020) 등이 있다.
김민철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역사학부에서 프랑스혁명기 정치사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서양 근대사 담당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2023)가 있으며, 번역서로 이슈트반 혼트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2025), 프랑코 벤투리의 『계몽사상의 유토피아와 개혁』(2018) 등이 있다
김봉준
대만 국립대만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조청관계가 사대관계에서 평등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의 연구교수이다. 근현대 동아시아 외교의 변화 및 한국과 대만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며, 주요 논저로 『中華秩序的崩壞—19世紀末的中韓關係與東亞國際關係的轉軌』(2025), 「19세기 말 청 해방론(海防論)과 조선」(2024) 등이 있다.
김현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정치사상사와 개념사 그리고 이론의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서양사정: 완역』(공역, 2021), 『근대 일본과 번역의 정치』(공저, 2023), “How Democracy Became Minjujuui: A Conceptual History of Democracy in Modern Korea with Focus on the Generalization Process of Minjujuui”(2023) 등이 있다.
민정기
미국 UC산타바바라 사학과에서 18세기 말 프랑스 생도맹그 식민지의 자유유색인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대서양 식민지사를 연구하며 당시 프랑스 식민지의 인종과 노예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아이티혁명기 송토낙스(L. F. Sonthonax)의 전면적 노예해방선언 분석: 혁명 이념과 식민지 상황의 결합」(2015) 등이 있다.
소진형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부에서 조선후기 정치사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조선후기 정치 지성사를 연구하며, 조선 후기 지도, 서학, 근대 시기 서양의 정치사상의 동아시아 수용 및 번역에 관심이 있다. 주요 연구로는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의 동아시아적 번역과 번역의 연쇄: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과 중국의 『법의 정신』 번역서의 정치개념을 중심으로」(2021), Remapping the World from East Asia: Towards a Global History of the ‘Ricci Map’(공저, 2024) 등이 있다.
신동경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영제국의 탈식민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이며,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글로벌 펠로우(2025~2026)로 선정되어 영제국에서 미국으로 현대 세계 패권의 이동과정을 연구했다. 주요 논저로 British Culture after Empire Race, Decolonisation and Migration since 1945(공저, 2023), “British ideas for new colonial universities at the end of empire”(2024) 등이 있다.
윤비
독일 훔볼트대학교에서 13세기로부터 마키아벨리에 이르는 정치사상의 변동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정치사상과 이론, 고중세 및 르네상스 지성사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고등연구원 펠로우(2023~2024)로 선정된 바 있으며, 주요 저서로 Wege zu Machiavelli. Die Ruckkehr des Politischen im Spatmittelalter (2021), 『위험한 국가의 위대한 민주주의』(2025) 등이 있다.
이새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19세기 일본의 유학과 서양정치사상의 관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이다. 19세기 일본의 역사와 사상을 동아시아 및 서양의 정치사상과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20세기 일본의 정치사 및 정치사상사로도 문제의식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自由」を求めた儒者:中村正直の理想と現實』(2020), 『메이로쿠 잡지: 문명개화의 공론장』(2021) 등이 있다.
이승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역사학부에서 18세기 상업사회의 맥락에서 유럽 계몽사상과 러시아제국의 개혁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예카테리나 2세의 입법위원회와 러시아의 상업화 논의」(2024)가 있으며, 번역서로 『예카테리나 서한집』(공역, 2022)이 있다.
이시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피에르 부르디외 장 이론을 기반으로 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한국 수용 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내용을 책 『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2022)으로 펴냈다. 서구이론 수용 현상에 대한 후속 작업들을 비롯하여 비판이론과 종교, 생태주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지식-담론들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성찰적이고 사회학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은경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일본지역 연구(일본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부교수이다. 주로 근대 일본의 역사를 여성 인물과 운동을 중심으로 연구해 왔고, 일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대중적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다. 주요 저서로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일본과 여성의 관계사』(2021),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2023), 『일본사 시민강좌』(공저, 2024)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부인·여성·여자: 남자가 읽은 일본 여성사』(2024) 등이 있다.
조준배
영국 버밍엄대학교 러시아동유럽연구소에서 스탈린 시대의 소련 노동조합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서양사 담당 교수이다. 서양현대사 및 소련사를 연구하며 노동과 복지 그리고 사상사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유라시아주의와 알렉산드르 두긴(Alexandr Dugin)」(2024) 등이 있다.
최정인
중국 베이징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왕안이의 상하이 글쓰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구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강의 중이며, 신시기 이후 중국의 문학과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