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영화는 막강한 상업주의적 동력에 힘입어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을 과시하면서 흥미와 오락, 감동과 주입, 각성과 환상이라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영향력 또한 전통적인 매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영화는 전달 형식이 갖는 종합적 특성에서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인간의 다양한 문화양태와 욕망을 가장 직접적이고도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역사와 현실』은 바로 이러한 영화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문학적 지식의 전달과 비판적 의식의 형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집필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장 흥미 있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되,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 가운데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건이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담고 있는 10편의 영화를 선정하였다.
첫 네 꼭지는 유럽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레미제라블>은 1830년대 프랑스 혁명 과정을 담은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되는 이 시기 프랑스의 현실을 역동적으로 묘사하였다. <고요한 돈강>은 1910년대 러시아 혁명을 다룬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혁명과 내전 속의 갈등, 동족상잔의 비극을 잘 표현하고 있다. <토지와 자유>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무대로 하여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당시를 재현해서 보여 주는 한편, 내전에 참여하였던 무정부주의자의 사상과 행동을 잘 그렸다. <타인의 삶>은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인 1980년대 전반, 감시사회였던 동독의 국가안전부 요원이 감시 대상인 예술가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신념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을 그렸다.
아메리카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도 두 꼭지 담았다. <굿나잇 앤 굿럭>은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휩쓸던 미국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과감히 나섰던 한 텔레비전 앵커의 용기 있는 행동을 다루었다. <오피셜 스토리>는 1976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군부가 저지른 국민에 대한 추악한 전쟁의 현실을 밝히고 있다.
그다음 네 꼭지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카게무샤>는 16세기 일본의 전국시대 다이묘들이 각축을 벌일 때 당시 가장 강력했던 영주 신겐이 죽자 그의 장수들이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짜로 위장한다는 내용으로 전국시대를 잘 재현하고 있다. <귀신이 온다>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군의 지배를 받던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소동을 통해 개인이 겪은 역사적 비극을 그리고 있다. <우리 학교>는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시의 한 재일조선인학교를 통해 해방 후 일본 사회에서 재일 조선인이 겪고 있는 문제와 교육 실태를 다루고 있다. <태백산맥>은 1948년에서 1953년 휴전 직후까지 한국현대사의 좌우 대립과 분단 문제에 대하여 다룬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소설의 내용 중에서 1950년 9월까지를 담아냈다.